인생 자체가 명함인 6070 큰언니들 인터뷰집
언제나 N잡러였지만 '집사람'으로.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려온 6070 여성들의 삶을
'일'의 관점에서 담은 인터뷰집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북리뷰 시작할께요!
제목부터가 너무 인상적이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라니..
재밌으면서도 함축적으로 책의 내용을 잘 담은 것 같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 신착 도서 코너에 있는 이 책을 낼름 대출해 와서 읽었다. (사실 인스타 이웃이 이 책의 저자 중 한명이라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읽으면서 내내 1961년생인 나의 엄마를 계속 떠올리게 됐다.
(잠깐 간략하게 제 엄마의 삶에 대해 기록해 보렵니다.)
외동딸로 태어나 20살이 되기 전에 부모 모두를 잃고 고아가 된 그녀의 60 여년의 삶은 누가 들어온 참 고된 삶이었다.
혼자 살 때는 배울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결혼한 후에는 매정한 시어머니와 얄밉고 고약한 4명의 시누이, 독불장군 아주버님의 시중을 들며 식사, 빨래, 청소, 심부름, 잡일 등을 하는 시집살이 속에서 삼남매를 키워야 했고,
아이들이 10대가 된 이후에는 양육과 살림에 생계까지 역할이 늘어났다.
이런 삶이 비단 나의 엄마만의 일은 아니었다.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집 안에서, 집 밖에서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기구하고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온 책 속의 다섯 큰 언니들에겐 한탄과 불만보다는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만약 차별과 구박 속에서 살아온 고령 여성들의 부정적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읽는 내내 불편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서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집안일부터 바깥일까지 집안의 진짜 가장 역할을 하며, 지금 이 수간까지도 N잡러로 활약하고 있는 우리의 엄마들.
이들이 없었다면 사회는 무너져내릴 것을 데이터와 통계가 뒷받침한다.
그동안,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와 일의 가치를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의 삶이 궁금하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 환경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책 정보
- 저자 :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 분류 : 한국 에세이
- 쪽수 : 296쪽
- 발행일 : 2022년 12월 20일
- 출판사 : 휴머니스트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인터뷰 내용 뿐 아니라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이들의 노동이 저평가된 구조적 맥락을 짚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며 당시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도 실려있어 그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저자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알고 이해하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그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했는지 책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목차
prologue 그 흔한 목소리를 찾아서
첫 번째 출근길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insight] 1954년 32만 명의 딸들이 태어났다
두 번째 출근길 우리가 일을 안 했다고?
희자 씨를 담기에 집사람은 너무 작은 이름
글 쓰는 사람, 인화정
[insight] 어느 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세 번째 출근길 남존여비에서 페미니즘까지
딸들에게 전하는 순자 씨의 진심
[insight]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insight] 딸들은 엄마의 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읽어냈다
네 번째 출근길 여기는 도시랑은 달라요
광월 씨가 10년째 부녀회장을 하는 이유
[insight] 나는 못 배웠응께 어른이 아니여
[insight] 나 태어나 이 광산에 광부가 되어
다섯 번째 출근길 오늘도 출근하는 언니들
[insight] 언니들의 장래희망
안나 씨의 노동은 사랑이 되었다
태순 씨는 새로운 70대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내가 명함이에요, 내 자신이
랩과 월요일을 좋아하는 은숙 씨
epilogue 그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이었다
by-line
참고문헌
감동을 남긴 문장
1950년대에는 영숙이라 불리는 딸들이 가장 많았다. 정애, 순자, 영희도 숱했다. 꽃부리 영英, 맑을 정晶, 순할 순順, 사랑 애愛 자 같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상이 곧 이름이 됐다. 어떤 딸을은 이름부터 차별받았다. 말순, 종숙, 후남, 끝순 등은 모두 '다음에는 아들을 낳자'는 바람이 반영된 이름이었다. _p.43
1970년 중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은 11만 6244명 중 인문계,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생은 7만 9938명이었다. '장남에게 부담 주지 말아라', '남동생에게 양보해라',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거들어라', '여자가 재주 많으면 안 된다' 등 그 시절의 상식으로는 여학생이 학업을 그만둘 이유가 차고 넘쳤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문턱에서마다 딸들은 그물에 걸린 것처럼 교육에서 걸러졌다. "(공부를) 그만 둔 게 항상 후회된다"는 회한은 정애 씨만의 것이 아니다. _p.46
모두가 꺼리는 적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불안정한 일자리, 감염 위험, 직업을 낮잡아 보는 인식을 고령층 여성들이 감수해온 덕에 이 사회가 유지됐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애들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까’, ‘우리 집엔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마치 집을 꾸리고 지켜온 것처럼 고령층 여성들은 이 사회를 꾸리고 지켜온 것이다. _p.109
“엄마는 어떻게 맨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저는 제가 엄마보다 인내심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엄마처럼 사는 일이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_p.127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딸들은 이러한 노동시장 전환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고, 가정에서는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 이후 여성 일자리의 양극화, 이어진 신자유주의 분위기는 '엄마의 노동'을 '나의 노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나는 엄마와 달리 이름이 남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혜원 씨의 것만이 아니었다. _p.142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와 각종 제도적인 개선에도 여성만 일과 가정에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상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 세대가 일 대신 가정을 선택했다면, 딸 세대는 가정보다 일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을 뿐이다. 딸들 간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임금 수준이 낮고 직업적 전망이 밝지 않을수록 결혼, 임신, 출산의 기점으로 일터를 떠나는 선택을 하기 쉽다. 이는 다시 일터로 돌아온 여성들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_p.146
평생 '임금 노동'과 '돌봄 노동'을 분주하게 오갔으면서도, 늘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엄마에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엄마 스스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엄마가 울었거든요. 페미니즘을 배워보라는 말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바뀌기 싫다'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한테는 페미니즘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혼하라는 얘기로 들린대요." _p.153
농촌 여성들은 퇴근 없이 일했지만 손에 지는 건 없었다. 개인이 임금을 받는 도시 노동과 달리 농촌은 가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집과 논밭은 모두 남편이나 시부모 혹은 시가 친척의 재산이다. 이미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경제공동체에 여성 개인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돈을 벌 곳도 마땅찮았다. 농촌에는 품삯일 말고는 여성 일자리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_p.212
파도처럼 몰아치는 나쁜 일 속에서도 굳건히 삶을 개척해 온 큰언니들의 메시지와 응원을 느낄 수 있기를,
나의 엄마에게 고생하셨어요,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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